박태옥의 고전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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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기 기자
  • 승인 2013.06.28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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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세 사람이면 호랑이도 만든다는데...

박 태 옥(철학박사/대전대 강의전담교수)

▲ 한비자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의 『한비자』「내저설상」편을 보면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일화가 나온다. 세 사람이면 호랑이도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중국 전국시대에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 인질로 가게 된 위나라의 태자를 수행하게 된 방공은 떠나기 전 왕에게 물었다. "지금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믿지 않는다"고 하자 "두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왕이 역시 "믿지 않는다"고 하자 다시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왕은 "과인은 믿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방공은 "시장에 호랑이가 없는 것이 확실한데도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하자 호랑이가 있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지금 한단은 위나라와 떨어진 것이 시장보다 멀고, 저를 비방하는 사람은 세 사람보다도 많으니, 바라옵건대 왕께서 잘 살펴주옵소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방공이 한단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왕을 만날 수가 없었다. 이미 방공은 왕에게서 멀어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비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한 상황을 극복하고 이상적인 정치현실을 구현하기 위한 해법으로 법가사상을 제시하였다. 인간은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추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올바른 통치는 도덕적 교화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았다. 위나라 왕이 방공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변심한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상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정치에는 인간적인 유대감이나 신뢰보다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법과, 신하와 백성을 제어하고 조종할 수 있는 술수와, 지배자의 권위가 보장되는 세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비자의 이런 정치철학은 진시황을 매료시켰고, 법가사상을 통치이데올로기로 채택한 진시황은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황제가 된다. 그렇지만 진시황의 이런 정치는 진제국을 겨우 15년 만에 무너지게 하였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압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18대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각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한양·성균관·가톨릭대 등 시국선언을 한 대학 이외에도 서울대와 중앙대, 건국대, 전남대 교수들도 논의중이라고 한다. 성균관대 교수 13명은 시국선언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와 민주주의 진전에 따라 정보기관이 국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명제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이 명제가 무너졌다”며 “정보기관은 다시 정권을 보위하는 친위대로 재편되었고, 국내 정치개입과 사찰, 공작이 일상화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은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중대 사태이므로 검찰은 진상을 엄정하게 규명하고 청와대와 국회는 국정원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가기관으로서의 본분은 망각한 채 불법적인 정치 개입과 사찰을 일삼은 국정원 사태를 보면서 세 사람이 만든 호랑이가 생각났다.


인적이 많은 시장에 호랑이가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여러번 되풀이되면서 믿을 만한 이야기로 뒤바뀌는 것처럼,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고 비판적 시각을 차단하는 여론 조작은 결국 불신의 늪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행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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