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조선의 마지막 공주는?
진짜 조선의 마지막 공주는?
  • 세종방송
  • 승인 2011.01.22 0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범한 대학생에서 조선의 마지막 공주로 변신한 이설 공주(김태희분)의 스토리를 담은 MBC드라마 '마이 프린세스'가 세간의 화제다.

극중에서 순종의 증손녀인 이설은 대한그룹의 손자인 박해영(송승헌분)과 남정우 교수(류수영분) 사이에서 러브라인을 만들며 엉뚱발랄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순종의 숨겨진 손자로 태어났지만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한'의 딸인 이설은 그 자신도 어린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드라마 속 이들처럼 조선의 마지막 왕족들은 비운의 삶을 살았다. 실제 조선의 마지막 공주는 누구이며,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선의 마지막 공주는 순조의 막내딸 덕온공주, 마지막 왕녀는 순종의 막내딸 덕혜옹주다.

조선은 왕의 적녀를 '공주'로, 왕의 서녀를 '옹주'로 봉했다.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서 1822년 출생한 덕온공주는 1837년 16살 때 윤의선과 결혼했지만 7년 뒤인 1844년 23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고종은 명성황후 민씨 외에 귀비 엄씨, 귀인 이씨, 귀인 장씨, 소의 이씨, 귀인 정씨, 귀인 양씨 등 총 7명의 부인과의 사이에서 많은 자식들을 뒀지만 모두 단명했다.

고종은 명성황후와의 사이에서 장녀인 아지공주를 뒀고 귀인들과의 사이에서 세 옹주를 뒀지만 귀인 양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덕혜옹주를 제외한 딸 세 명은 모두 정식으로 봉해지기 전에 사망했다. 정식으로 봉해진 최후의 왕녀는 '덕혜옹주'인 셈이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인 1912년 덕수궁에서 출생한 덕혜옹주는 고종과 복녕당 귀인 양씨 사이에서 난 고명딸이다.

그녀는 고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지만 왕족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탐탁찮아했던 일본 총독부 때문에 9살이던 1921년까지 이름 없이 '복녕당 아기'라고 불려야 했다. 1919년에는 고종에 의해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했다.

덕혜옹주는 1921년 5월4일 옹주로 봉해졌지만 곧바로 서울의 히노데(日出) 소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가야했다. 또 19살이었던 1931년 5월8일 쓰시마섬 도주인 소 다케유키와 강제 결혼해야 했다.

그녀는 1922년 8월18일 딸 마사에(정혜)를 낳았지만 출산 후 정신쇠약과 몽유병 등으로 고통을 겪었다. 1955년 마사에가 행방불명되면서 증상이 악화돼 1958년에 남편 소 다케유키에게 버림받고 도쿄 인근의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다.

덕혜옹주는 박정희 정권 당시였던 1962년 1월26일 오후 12시35분 김포공항을 통해 고국에 돌아왔다. 이후 의민태자비 이방자 일가, 유모 변복동 여사와 함께 창덕궁에 기거하며 노환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21일 타계했다.

현존하는 고종의 직계 후손은 둘째아들인 의친왕의 후손들 뿐인데 의친왕은 정부인인 덕인당 김씨 등 10여명의 부인을 뒀고 이들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12남9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의친왕의 자손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구황실재산 관리법'을 만들어 황실 소유의 모든 재산을 국유화하고, 6·25전쟁 피난길에 의친왕이 짐보따리를 도둑맞으면서 곤궁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마지막 황세손이었던 영친왕의 아들 이구씨가 2005년 일본의 한 호텔에서 숨진 후 전주이씨 종약원은 2005년 영친왕 가계의 양자로 입적한 이원씨를 황실 후계자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한제국 황실이 약 1년 뒤 의친왕의 둘째딸 이해원씨를 여황(女皇)으로 추대하면서 현재는 왕손들 사이에서 '적통성'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이해원씨의 삶도 순탄치는 않았다. 그는 1936년 경기여고를 졸업한 후 남편 이승규씨와 결혼했지만 한국전쟁 때 남편이 강제 납북됐고 이후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